동생과 쇼핑을 끝내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 섭섭해 영화 한편 보려고 찾았다. 오홀~ <패솔로지> 개봉중인데 시간이 밤 10시. 어떤 것을 볼까 망설이다 리암니슨 주연의 <테이큰>을 선택했다.
토요일 저녁 8시. 극장 안에는 <테이큰>을 보려는 이들로 꽉찼고 영화 내내 리암니슨의 액션으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리암니슨의 딸 '킴'이 유럽여행을 떠나고 프랑스에서 납치를 당했는데 전직 출신인 아버지 리암니슨이 구해낸다는 것이다. 리암니슨이 한두번 툭툭 건드리면 사람들이 모두 나자빠진다. 아무데나 쏴도 급소가 저격돼 쓰러진다. 강철 아버지의 표본을 보는 듯 했다.
리암니슨이 사랑하는 딸을 잃고 괴로워하기 보다 전세기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해 납치경로를 역추적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딸을 구출하기 위해 역추적하는 과정은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져 있다.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은 불법이어도 성립되는 것일까.
대사처럼 "밥 먹고 해왔던 일이 이것인지라" "나에겐 남다른 재주가 있어" "찾아내 죽이겠다" 등등 온화해 보였던 리암니슨이 이렇게 섬뜩해졌다. 딸을 잃고, 아들을 잃은 부모 마음이 어디 다르겠나. 가슴이 찢어지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되찾아오겠다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터.
그럼에도 이처럼 남다른 재주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피멍이 들도록 가슴을 내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액션영화, 그것도 헐리웃 휴머니즘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을 지키며 '철강 아버지'로 거듭난다.
이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다이하드>는 대표적인 '철강 아버지' 유형이다. 잘생기고 힘세고 유머러스한 아버지가 가족까지 구출하는 내용은 언제 봐도 기분좋다.
헐리웃 휴머니즘은 한국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괴물>에서 송강호는 딸 고은아를 찾기 위해 철강 아버지로 변신한다. 한강고수부지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바보처럼 순박했던 송강호는 딸이 괴물한테 잡혀가자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구출작전을 펼친다. 결국 꼬챙이에 낀 괴물은 죽는다..
반면 <그놈목소리>에서 설경구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어쩌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처음엔 아이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을 떨어지고 급기야 사체가 발견된다. 영화 속 김남주는 가슴에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내치며 힘들어한다.
<밀양>에서 전도연은 아들을 잃어 돈을 요구하는 납치범들에게 돈다발을 가져간다. 남편 고향에 내려와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뿐이었는데 분신이었던 아들이 납치되고, 분노와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어떤 이들은 <그놈목소리> <밀얌>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다이하드> <괴물>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꿈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테이큰>은 어떨까?
<테이큰>을 보는 내내 불편함은 계속됐다. 영화 시작부터 행복했던 5살배기 킴은 어느덧 17살 숙녀로 성장했다. 리암니슨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킴을 위해 유명 팝가수의 명함을 전해주려 했지만 프랑스에 있는 미술박물관에 가겠다는 킴에게 여행을 허락한다. 하지만 불안한 느낌은 계속됐는데...
역시나 킴은 여행간 첫날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고 리암니슨은 익숙한 행보로 그 뒤를 쫓는다. 가죽자켓을 입은 리암니슨은 우울한 얼굴로 딸의 행방을 조사한다. 공항에서 여행 나온 어린 유학생들을 꼬시는 삐끼(?)를 쫒고, 거리 창녀에게 접근해 우두머리가 있는 곳까지 파고든다. 결국 납치범을 찾아내 전기고문 등으로 복수하고 인신매매중인 현장에서 딸을 구해낸다.
프랑스 보안부국장은 리암니슨의 거침없는 행보에 '소란'을 붙여 내보내려 했다. 이에 리암니슨은 평화로운 어느 저녁 부국장의 집을 방문해 그의 아내를 총으로 협박하고 딸을 사간 놈을 찾아낸다. 파티장에서 경매에 붙여지는 딸을 보고 피가 거꾸로 쏟아지던 리암니슨. 급기야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이들에게 총을 겨눈다.
처음에는 딸을 구하겠다는 부정(父情)이 애틋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이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내가 저 상황에서 적을 쉽게 무너뜨린다면 저렇게 행동했을까 싶을 정도로 '철강 아버지'는 '이기적인 아버지'로 변모했다. 내 딸을 위해 자신을 가로막는 자에게 총을 겨누는 아버지...
최근 아동 납치, 살인 등으로 흉흉한 사회다. 남의 일인줄 알았는데 어느덧 내가 당사자가 되어 납치범과 협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든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이 '철강부모'로 변신해 총을 쏘고 아이를 구출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 아이만 고스란히 찾아오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간만에 웃으며 본 '다찌마와 ㄹ ㅣ' (2) | 2008/08/25 |
|---|---|
| "빨리빨리" 바쁜 일상 속 '쿵푸팬더'의 유쾌함 (0) | 2008/06/28 |
| <테이큰> 넘치는 부정(父情) 지나쳐도 '눈살' (23) | 2008/04/20 |
| 영화 ‘헤어스프레이’에서 본 행복 바이러스 (2) | 2007/12/10 |
| 영화 '식객'에서 되새겨본 '육개장' (2) | 2007/11/05 |




